한국에서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뒤 말레이시아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업무보다 먼저 낯설었던 것이 조직 문화였습니다.
제가 일했던 곳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근무했고, 중국계 말레이시안, 인도계 말레이시안, 히잡을 쓴 말레이시안 뿐만 아니라 일본인, 한국인 등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가 경험한 한 회사의 이야기입니다. 로컬기업인지 글로벌기업인지, BPO인지, 또 어떤 매니저와 일하는지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저에게는 꽤 재미있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팀장님도 부장님도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편하다고 느낀 것은 호칭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대리님, 과장님, 팀장님처럼 직급을 붙여 부르는 것이 익숙합니다. 나이나 경력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할 때도 인사부에서 ‘수평호칭제’를 도입하며, 갑자기 직급을 빼고 ‘OO님’이라고 부르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상무님, 부장님에게 갑자기 ‘OO님’으로 부르는 것은 여전히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
그럼 말레이시아는 어땠을까요?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서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경력이 길든 짧든 서로 이름을 부르니 관계도 훨씬 수평적으로 느껴졌고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거나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분위기도 제가 경험한 한국 직장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한국 대기업에서 이른바 ‘라떼’ 시절부터 젊은 MZ세대와 함께 일하는 환경까지 경험했던 저에게는 이 차이가 꽤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프면 MC(병가)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됐습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아침에 갑자기 “오늘 아파서 못 나갑니다”라고 연락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아파도 출근했다가 병원에 잠깐 다녀와 다시 일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아프면 아침에 상급자에게 우선 알리고, 동네 클리닉에서 진료를 받고 MC(Medical Certificate)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고 쉬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말레이시아 Employment Act상 일반 유급 병가는 근속 기간에 따라 연 14일, 18일, 22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휴가와는 별도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관리자에게 알리고 MC를 받은 뒤 HR 시스템에 등록하면 끝이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도 어느 누가 굳이 “왜 못 나왔어? 어디 아팠어?”라고 캐묻지 않았습니다. 친한 동료라면 걱정해주지만 병가 자체는 개인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참 편했습니다.
휴가도 퇴근도 눈치를 덜 봤습니다
Annual Leave(연차 휴가)도 비슷했습니다.
업무에 문제가 없도록 조율한다면 일주일 이상 휴가를 사용하는 것도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직원들은 사실 휴가 때 본국에 다녀오려면 며칠 휴가로는 부족하기도 합니다.
퇴근할 때도 굳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업무를 끝냈다면 퇴근합니다.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칼퇴’가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습니다.
그 대신 내 업무 때문에 다른 팀원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편하지만 가끔은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비자나 HR 관련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 진행이 너무 느리거나 ‘이걸 왜 내가 계속 확인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조직에서도 무언가를 계속 바꾸고 개선하기보다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더 익숙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빠른 업무 방식과 항상 뭔가 더 개선하고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건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문화의 차이에 가까웠습니다.
왜 쉽게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공개적으로 크게 화를 내거나 상대방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상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문화에서는 관계의 조화와 상대방의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공개적인 비판이나 공격적인 표현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함께 사는 나라인 만큼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의 빠르고 직접적인 업무 문화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이런 모습도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빨리빨리와 느긋함, 무엇이 더 좋을까?
한국은 경쟁이 치열하고 ‘빨리빨리’라는 말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나라입니다.
그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고 업무에서도 문제를 발견하면 빨리 해결하고 개선하려는 힘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 속도만큼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도 큽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면서 저는 반대편의 장점도 보게 됐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지나치게 압박하지 않고, 아프면 쉬고, 휴가를 쓸 때는 쉬고, 일이 끝났다면 집에 가는 것.
예전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모습이 어느 순간에는 사람을 조금 여유 있게 만들어주는 문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나이 들면서, 살아가면서 항상 느끼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
보고서는 예쁜 것보다 핵심이 중요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PPT나 Word 보고서 하나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내용 뿐 아니라 문장, 표, 형식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까지 신경 썼습니다.
제가 일했던 말레이시아 직장에서는 그런 형식적인 부분에 들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핵심이 무엇인지,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는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어도 비슷했습니다. 완벽한 비즈니스 영어를 쓰려고 지나치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요즘은 ChatGPT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이메일이나 보고서 표현을 다듬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내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맞는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영어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맡은 일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면서 가장 편했던 것은 나이와 직급보다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상사를 이름으로 부르고, 아프면 MC를 쓰고, 휴가를 가고, 일이 끝나면 퇴근합니다.
한국의 타이트한 조직 생활에 익숙했던 저에게 상사와 동료들은 조언은 정말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회사는 나가면 그만이야. 네가 가장 중요해. 당연히 아프면 쉬어야하고, 가정에 일이 생기면 그게 최우선이지.’ 🥹
그 대신 맡은 업무는 책임지고 처리해야 합니다.
한국의 빠르고 치열한 조직문화에도 장점이 있고, 제가 경험한 말레이시아의 조금 느긋한 조직문화에도 장점이 있었습니다.
직접 두 곳에서 일해보니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보다 결국 ‘Culture Difference’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일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비슷합니다.
꼰대같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
그래야 어디에서 일하든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