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영어가 부족해도 살 수 있을까?|직접 살아보니 달랐던 현실


말레이시아 이주를 준비할 때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영어입니다.

아이들은 국제학교에 보낸다지만 엄마는 어떡하지? 집을 구할 때 에이전트와 이야기해야 하고, 은행에도 가야 하고, 병원에서는 어디가 아픈지 설명해야 하는데 영어를 잘 못해도 정말 살 수 있을까?

제 경험으로는 가능합니다.

오히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이 해외생활을 시작하기에 말레이시아만큼 부담이 적은 나라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렇게 오래 영어를 배웠는데 왜 말이 안 나올까?

저도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영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스피킹이 문제였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세대의 한국인이라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공부했습니다. 문법도 배우고 단어도 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이 앞에 서면 머릿속에서 한국말 문장을 만들고, 영어로 번역하고, ‘이 문법이 맞나?’ 고민합니다. 틀릴까 봐 쑥스럽기까지 하니 몇 마디 하려면 왜 그렇게 답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 와서 조금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영어, 실제로 어느 정도 통할까?

말레이시아에서는 영어를 접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식당이나 카페 직원은 물론 Grab 기사나 콘도 가드와도 기본적인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분명 영어 공부는 내가 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들의 일상 영어에는 거침이 없더라구요.

문법이 조금 틀리든 문장이 짧든 일단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어 몇 개를 섞어서라도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도 알아듣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렇게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가 비교적 편한 데에는 이 나라의 독특한 배경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다문화 국가입니다. 말레이어가 국어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교육과 비즈니스에서도 영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영어가 서로 의사소통하는 중요한 언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레이시아는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이것 역시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다민족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면 더 잘 보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말레이시아에는 여러 민족이 함께 살게 되었는지,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무조건 짧고 간결하게!”

한국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야, 여기서는 길게 말하면 오히려 안 통해. 무조건 짧고 간결하게!”

“What documents do I need?”

“It doesn’t work. Could you check?”

이렇게 짧게 말해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습니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 않아도 서로 알아듣는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저 역시 이런 환경 덕분에 영어에 대한 부담을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반대로 어려운 표현이나 긴 문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생활이 되다 보니 영어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절실함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주변 국가를 여행하고 나니 말레이시아가 더 편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살다 보면 인도네시아 발리,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주변 국가를 여행할 기회가 많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히려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게 참 다행이구나’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여행했던 곳 중에는 가까운 동남아시아라도 간판이나 메뉴판, 편의점 상품 설명이 현지 언어 위주라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텔을 벗어나 일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간단한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도 있었고요.

반면 제가 생활해온 쿠알라룸푸르와 주변 도시에서는 영어 때문에 이런 불편을 겪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도로와 쇼핑몰, 공공장소의 안내와 사인에도 영어가 함께 표기된 경우가 많아 운전할 때도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간단한 것을 물어봐도 영어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말레이시아 어디에서나 영어가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로컬한 시장이나 일부 중국계 상점, 지방이나 시골에서는 영어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제가 주로 쿠알라룸푸르와 수도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느끼는 차이도 있을 겁니다.

요즘은 번역 앱과 AI까지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처음 왔을 때보다 해외생활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Grab으로 이동하고,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장보기도 배달시키고, 식당에서는 QR로 주문하는 곳도 많습니다.

여기에 번역 앱과 ChatGPT 같은 AI까지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혜택(?)으로 인해 학교에서 받은 영어 이메일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번역하거나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할 수 있고, 학교나 에이전트에게 보낼 영어 메시지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 증상을 영어로 어떻게 설명할지도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계약이나 의료·비자처럼 중요한 내용은 AI에만 의존하지 말고 원문과 공식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겠죠?

그래도 영어공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해외까지 왔으니 이번에는 영어 하나 제대로 끝을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대학교 부설 어학원도 다녀보고, 영어학원도 가보고, 1:1 레슨도 받아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핑계, 바쁘다는 핑계로 하다 말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영어를 듣고 사용하다 보니 처음보다 당연히 나아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많습니다.

말레이시아 생활이 제 영어를 갑자기 유창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닙니다.

대신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했던 ‘틀리지 않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문장을 머릿속에서 다 만든 다음 입을 여는 것보다 짧게라도 일단 말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해외 생활을 시작할 나라로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것이 꽤 괜찮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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